울산대학교 |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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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프로그램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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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보낸 3.5초 !
작성자 양** 작성일 2009-05-21 조회수 1201

캐나다에서 보낸 3.5

20060104 양*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엊그제 캐나다에 도착한 것 같은데 이제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남긴,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소중한 추억들을 지금 부터 하나 하나 풀어보려 한다.

처음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첫째날 밤은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내가 사는 홈스테이 집에는 아이들이 4명이나 있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모두 나를 꺼려하는 것 같아 상처를 받았었다. 빨리 친해지고 싶었지만 말이 너무 빨라서, 특히 9, 7살짜리 아이들, 걸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었다. 두 아이 밑으로 4, 3살짜리 아기들이 있었는데 붙임성이 좋아서 금방 나랑 친해졌다. 그래도 문제는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였다. 아기들이 하는 말은 어른들이 하는 말 보다 배로 어려웠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저 웃기만 했었다. 캐나다에 온 후 일주일 정도는 오후에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집에 오면 아이들은 내 손을 끌고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가끔은 캥거루가 되기도 하고, 공룡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에 맞아 죽는 시늉까지 했었다. 계속 그렇게 놀다보니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뭘 원하는지 정도는 눈치껏 파악이 가능해졌다. 첫째와 둘째 아이와는 꽤 오랜 시간 서먹서먹 했었지만 같이 피아노도 치고, 게임도 하고,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첫째 아이는 게임을 하거나 DVD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가끔 DVD를 볼 때 자막을 켜놓으면 자기가 생각하기에 내가 모를거라 생각하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아냐고 물어보거나 영어로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숙제나 시험, 친구와 약속 등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할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 4살배기 아기가 학교에 가지 말고 놀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기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가끔은 조금만 놀아준다는 것이 깜박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아주다가 버스를 놓친 적이 있었다.

한 사흘 동안 집에서 학교로 가는 것은 거의 모험이었다. 버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데다가 심지어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틀 연속으로 길을 두 번이나 잃어버리고 나니 대충 감이 잡혔다. 캐나다에 온 지 둘째날, 처음 길을 잃었었는데 다행이도 마음씨 좋은 노부부를 만나 편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내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우리 홈스테이 아주머니의 친구분께서 친절하게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갈아 타야 하는지 직접 기사분께 물어가며 가르쳐 주셨었는데, 나는 다음날 또 길을 잃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내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에서 그냥 기다렸더니 약 30분 후 내가 내렸던 버스가 다시 왔다. 그래서 우선 버스를 탄 다음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내 주소를 보여주며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실은 그 당시에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뭐라 뭐라 말은 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아저씨가 했던 말은 지금은 운전 중이니 우선 앉아있어라. 버스를 멈춘 후에 자세하게 가르쳐 주마.” 였다. 홈스테이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운전 중에 버스 기사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안되는 것이란다. 아저씨가 알려준 길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쭉 가다가 코너만 돌면 되는 길이었는데 나는 1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부터는 제대로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몇 정거장 앞에 내려서 걸어 가기도 하고 다른 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버스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길을 모를 경우, 무모하게 아무데서나 내리거나 무작정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버스 기사분께 물어봤다. Lethbridge에는 국제 학생들이 많아서 버스 기사분들이 친절하시다. 꼭 학생들에게만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한 기사분들이었다. 한국 버스는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이 곳 버스 기사분들은 정말 좋았다. 버스 기사분들 만이 아니라 Lethbridge 사람들은 거의가 다 친절하다. 가끔 길에서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버스를 놓쳤을 경우 처음 보는 사람의 차를 얻어타는 것은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닌것 같다. 홈스테이 아저씨는 조심하라고 일러줬지만 버스를 놓쳤던 난 학교까지 태워 준다기에 냉큼 얻어탔었던 기억이 난다.

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Waterton 여행에 참여할 학생들을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20달러를 내야 하지만 이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Waterton은 정말 캐나다가 예쁘다란 생각을 들게 했다. 가벼운 하이킹이라고 해서 따라갔던 산행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었지만, 아니 실은 내가 운동 부족이라 그런것이지만, 정상에서 봤던 풍경은 정말 달력 그림 그 자체였다.산과 맑은 물, 장난감 같은 지붕들, 예쁜 항구는 내 디지털 카메라가 오롯이 담아내기에는 너무 거대한 풍경이었다. 하이킹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다운타운으로 갔다. 다운타운에서는 내가 정상에서 봤던 그 맑은 물에 발도 담글 수 있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을 수 있고, 엉덩이가 통통하게 예쁜 사슴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단다. 하이킹 후에 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옮겼다. 고기는 조금 질기고 텁텁했지만 무대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도 듣고 춤도 배웠다. 춤은 박자 맞추기도, 스텝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친구들 끼리 손 마주 잡고 음악에 맞춰 빙글 빙글 도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한국 학생들 끼리 잔디 위에 동그랗게 앉아 게임을 했었는데 게임하는 소리가 재미있게 들렸는지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도 함께 하고 싶어 했었다. 한국 게임을 영어로 설명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들면 모여들 수록 재미있었다. 그 때 배웠던 Duck and Goose는 우리나라의 수건 돌리기와 비슷한 게임이었다. Waterton 여행 후, 추수 감사절 휴일 기간동안 울산 학생들끼리 Banff 여행을 갔었다. 조금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볶음밥, 비빔밥 등 한국 음식도 만들어 먹고 경이로운 자연 풍경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으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맑다 못해 옥빛을 내던 호수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화롭던 호텔도, 곤돌라 안에서 내려다 봤던 예쁜 풍경들도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학교 수업은 한국의 교육 방식과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Grammar 수업의 경우는 거의 한국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가끔은 너무 비슷해서 실망도 했었지만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실생활 표현이라든지 문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문법적 표현이 실제로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토론을 하는 시간을 주는 것은 좋았다. Writing 수업은 약간 어려웠지만 재미를 느꼈던 수업이기도 했었다. 한국에서 수업을 받을 때 처럼 영작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달달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영어로 글을 쓰면서 이 표현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우리말로는 술술 나오는 표현들, 같은 뜻이지만 더 강하게 혹은 완곡하게 바꿀 수 있는 표현들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어로는 너무 힘들었다. 시험도 새로운 방식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퀴즈, 발표, 숙제 등으로 나눠서 평가를 했다. 그래서 중간고사와 숙제의 반영 비율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발표같은 것이 성적에 더 많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었다. 덕분에 중간고사 기간이 아닌데도 평일은 물론 주말에 까지 숙제와 발표준비 때문에 도서관에 박혀있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집, 학교, 도서관, 다시 집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했었다. 캐나다 친구들은 시험이나 공부따위 잊어버리고 놀러가라고 이야기 하기 일수였는데 실제로 산더미 같은 숙제를 뒤로 하고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하루에 3, 4시간 자면서 숙제를 끝냈던 적도 있었다.

시험이나 숙제로 바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이리 저리 놀러다니느라 바쁘기도 했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가장 신나고 뿌뜻한 일 중 하나였다. 나를 포함한 몇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 마다 Conversation connection 클럽에 갔었다. 성실하게 꼬박꼬박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월요일에 숙제가 없는 날은 클럽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Conversation 클럽은 나의 영어에 도움을 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애썼다. 때로는 심각하게 한국 학생들끼리 있더라도 영어를 쓰라고 충고를 해주기도 했었다. Conversation 클럽 마지막 날은 파티를 열었다. 불고기도 구워먹고 게임도 하고 집에 가기 전에는 심하게 눈싸움도 했다.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매주 금요일에는 Bible Study에도 참여를 했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사람들이 좋아서 금요일 마다 교회에 갔었다. 교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친해졌다. 오히려 Bible Study보다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고 유익했던 것 같다. 내가 있던 반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었다. 일본에서 온 친구 1, 중국에서 온 친구 3, 이란에서 온 친구 1명을 포함해서 총 13명이 같은 반이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했었지만 같은 반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가까워졌다. 일본인 친구와는 집에 놀러갈 정도까지 친해져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일본 음식을 대접 받기도 했었다. 중국인 친구들은 한류열풍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 가수나 한국 프로그램에 대해 많이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틈틈이 짬날 때마다 했던 쇼핑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곳은 은근히 세일도 자주 하고 할인점도 많아서 같은 물건이라도 싼 값에 구매가 가능하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차마 구경도 못했던 명품들이 여기에서는 반값에 팔고 있었다. 매장 점원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셔서 사은품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설명이 어렵다고, 잘 못알아 듣겠다고 불평했지만 나중에는 화장품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설명을 듣는데 재미를 붙였다. 화장품 설명을 듣는것은 의외로 괜찮은 영어 공부가 된 것 같다. 할로윈이 가까워 오면 초콜릿을 싸게 파는데 그 기간에는 지갑을 열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고생했었다.

캐나다에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왔지만 오히려 영어에 푹 빠지기 보다는 새로운 친구들, 캐나다 문화, 캐나다의 환경에 흠뻑 젖어버린 것 같다. 생각했던 것만큼 영어 실력이 확 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영어보다 더 소중한 것들, 소중한 인연들, 추억들을 얻었으니 후회는 없다. 캐나다 Lethbridge에서 보낸 3.5초 같았던 짧은 시간, 평생 기억할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